일본 ‘1회용 파견’ 급제동…고용 안정화로 유턴
하토야마 내각, 24년만에 파견제 ‘대수술’ 나서
“기능 숙련위해 고용안정 필요” 제조업 원칙적 금지
날품팔이·한시파견도 제동…개정안 6월 통과될듯
도요타자동차는 회사가 한참 잘 나가던 지난 2004년 1350명의 파견사원을 고용했다. 그러나 2008년 가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나빠지자 이들을 줄여 지금은 50명만 남겨두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늘었어도, 지난해 4월 입사한 대졸사원 900여명을 일시적으로 공장에 배치해 대응했다. 파견노동자들을 고용 조정의 ‘범퍼’로 쓴 셈이다.
후생노동성 집계를 보면, 파견노동자는 전체 일본 노동자의 3%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해 일본에서 사라진 58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55%는 ‘파견’ 일자리였다. 파견노동자 140만명 가운데 넷 중 한명 꼴인 32만명이 지난해 일자리를 잃었다.
“갑자기 해고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분한 마음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감정을 공통되게 느낄 수 있어요.” 한 일본인 노동상담가의 말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신속하게 결원을 보충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파견노동자를 쓰고, 또 낡은 부품처럼 쉽게 버린다.
일본이 이런 노동자 파견 제도에 ‘대수술’을 선언했다. 파견고용을 더 쉽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지금까지의 흐름을 뒤집어, 함부로 파견고용을 못하게 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로 한 것이다. 불안정 고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진 데 대한 반성에서다.
하토야마 내각은 지난 19일 등록형 파견과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파견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의결했다. 연립여당이 이미 합의한 이 법안은 6월 중순에 끝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일감이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고용해 파견하는 이른바 ‘등록형 파견’은 이번 법개정을 통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파견회사는 통역, 비서업무 등 26개 전문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할 노동자를 상시고용(상용형 파견)해 일이 있든 없든 급여를 줘야 한다. 날품팔이나 고용계약 기간이 2개월 이하인 파견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장기고용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파견노동자의 42% 가량은 현재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자문기관인 노동정책심의회는 “제조업은 국가 기간산업인데 노동자가 기능을 계승하려면 안정적으로 고용돼 있는 게 중요하다”고 이런 조항을 넣는 이유를 설명했다.
법을 어기고 파견사원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그 기업이 파견사원에게 고용계약을 신청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담았다. 법 개정안은 등록형 파견 및 제조업 파견의 원칙적 금지는 법 공포뒤 3년 이내에, 나머지는 법 공포 뒤 6개월 안에 시행할 예정이다.
재계는 강력한 파견규제가 인건비를 높여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게 할 것이라고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 고가 노부아키 회장은 “그것은 기업 논리다. 연수입 200만엔(2400만원)이 안되는 노동자가 1000만명이나 되는데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주더라도 파견을 규제하는 쪽이 옳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1986년 16개 업무에 한해 처음 파견노동을 허용했고, 점차 대상을 확대하다 1999년엔 파견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고이즈미 내각시절 파견노동자는 크게 늘어 2002년 43만명에서 2008년 14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번 법개정이 고이즈미 내각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뒤엎는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겨레(2010.03.21) 정남구 특파원
○ 일 파견법 개정 남은 문제는
‘비정규직 저임 개선’ 앞으로 숙제
‘동일노동 임금 균형 고려’ 권고뿐
일 노총 ‘비정규직’ 춘투 과제로
파견노동자와 계약직, 시간제근로자 등을 모두 포함한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9년 1721만명으로 전체 노동자 5102만명의 33.8%를 차지하고 있다. 1991년 19.8%에서 2008년 34.1%까지 늘었다가 파견노동자의 대량 해고로 지난해엔 비율이 조금 낮아졌다.
일본의 비정규직도 불안정 고용 못지 않게, 낮은 급여가 문제다. 남자의 경우 연간수입이 200만엔에 미치지 못하는 정규직은 6.7%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은 절반이 넘는 54.6%에 이른다. 주 35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연간 수입이 100만엔에 못미치는 남자 비정규직도 25%에 이른다. 비정규직 여성은 83.2%가 연수 200만엔 미만이고, 36.2%는 100만엔 미만이다. 일본 노동자들의 연평균 급여 290만엔에 견줘 턱없이 적다.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조항도 일부 담고 있다. 우선 일정기간 고용한 파견노동자를 고용주가 무기한 고용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지웠다. 또 파견노동자 임금을 결정할 때 파견돼 일하는 회사의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과 균형을 고려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조항들은 강제 규정은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개정안은 파견받은 회사가 파견노동자 1명당 얼마를 파견회사에 주는지, 그리고 파견회사는 노동자에게 실제 얼마를 지급하는지를 따져 그 차이(마진)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파견회사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다.
파견법 개정을 앞장서 주창해온 노동조합은 노사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올해 ‘춘투’(산하 노조가 일제히 벌이는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부터 파견사원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노사교섭의 과제로 하도록 산하 노조에 요청했다. 또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목표로 파견회사 업종단체와 협의하는 자리를 만들어 4월까지 협의한 뒤, 이 회의를 매년 정례화하기로 했다. / 도쿄 정남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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